사진 · 한국관광공사

명소

사충서원

노론 4충대신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신임옥사와 당색 정치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설 · 언제 가도 좋아요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232번길 89-8

✦

AI가 정리했어요

여기서 뭐 해요

  • 묘정비 글씨 감상하기
  • 사당과 삼문 둘러보기
  • 봄·가을 향사 참관하기

알고 가면 좋아요

  • 1968년 현 위치로 이건되었으며 상설 운영 중
  • 주차장 있음
한국관광공사 설명문과 블로그 후기를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시간전화 문의
쉬는날전화 문의
주차가능

위치

크게 보기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232번길 89-8

이용 안내

이용시간
전화 문의
쉬는날
전화 문의
주차
가능
문의
02-736-0400

소개

사충서원은 ‘네 명의 충신을 모신 서원’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1725년(영조 1) 노론 4충대신인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를 제향 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경기도 과천(현 동작구 노량진동)에 건립되었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를 책봉하고 대리청정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지만 1727년의 정미환국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었다.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처럼 사충서원은 노론·소론 사이의 시비여하에 따라 철폐와 복설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당색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나, 영조 이후의 역대 왕들이 모두 영조의 후손이었던 관계로 영조에게 충성을 다한 4대신의 서원이라 하여 특별한 은전을 받았다. 이에 따라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단행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다. 그 후 1927년 봄에 이곳이 철도용지로 편입됨에 따라 당시 고양군 한지면 보광동(현재의 서울특별시 보광동)으로 이건 하였다가 6·25때 파괴되었다.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근래 자리를 옮겨 세운 탓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삼문만 복원되었다. 사당과 삼문이 남향으로 배치되었고, 서원 남쪽 가까운 곳에 수복청이 위치하고 있다. 삼문 오른쪽 앞에는 서원과 함께 옮겨온 묘정비는 정조 10년(1786)에 세워졌다. 오래되어 글씨가 희미해졌지만,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오재순이 글을 썼고 좌의정 홍낙성이 글씨를 썼다. 4대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알리는 내용이다. 비문의 왼쪽 면에는 1928년 사충서원 자리가 철도 용지로 편입되어 서원을 한강 상류의 보광리로 옮기게 된 사연이 기록되었고, 오른쪽 면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서원을 1968년 현 위치로 옮겨 새로 중건한 과정이 적혀 있다. 2020년에 서원최초로 한글홀기편람을 제작하여 한글제향을 지냈고, 2022년에는 사충신순절300주년 행사가 있었다. 2023년에는 사충신의 영정사진이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다녀온 사람 후기

네이버 블로그 검색 결과입니다. 제목을 누르면 원문으로 갑니다. 최근 30일 언급 1건.

가는 김에

의안대군방석묘역
명소 · 직선 2.4km
검단산
공원 · 직선 2.7km

출처: 한국관광공사 TourAPI

다녀온 사람 후기 보기